즐거운 농부

고향가는 길

해바라기요양원 2010. 9. 5. 11:29

 추석을 앞두고 조상님 묘소 벌초하러 고향에 갑니다. 부모님 모시고 동생과 함께 오랫만에 가는 길입니다.

마이산휴게소 전망대에서 본 마이산의 모습.. 저 산넘어 반대편이 제 고향마을입니다.

 휴게소 위 정자

 한국의 명승 12호?? 저도 처음 알았네요. 저한테 보고도 안하고 누가 이런 것을 만들었을까요 ㅎㅎ

마이산은 용암이 분출되지 못하고 땅속에서 그대로 굳었다가 위를 덮었던 흙이 사라지자 나타난 산이라서

직접 보면 더 신기합니다. 꼭 콘크리트에 자갈 섞어놓은 것처럼 생겼죠.. 

한라산이나 백두산처럼 용암이 땅을 뚫고 나오는 것만 봐왔기 때문에 더 신기하죠.

화가나면 밖으로 분출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속에 삭이고 참는 사람도 있듯이... 마이산은 참고참아

오늘처럼 유일무이(?)한 용암산이 되었습니다.

 마이산 조각과 마이산의 모습이 잘 어울립니다. 우리 집에도 이런 마이산 조각을 만들어 놓을 텐데 쩝...

입맛만 다십니다.

 저 길을 걸으면 하늘까지 갈 수 있을까요

 조상님 묘소가 있는 곳에서 본 마이산의 모습... 휴게소 정 반대편이죠

 예초기를 열심히 돌렸더니... 아직 실력이 좋지 않아 깔끔하게는 안되네요. 애지중지하던 장손자가 깍아드리니

마음은 흐믓하실 듯 합니다.

 동생이 교대로 예초기를 돌리고 어머니는 먹을 것을 준비하시고. 동생은 처음하는 일이지만 저보다 더 잘하네요.

예초기에 문제가 생겼는데 척척 고치기도 하고.. 그래도 공대출신이라고 좀 다르긴 한가 봅니다.

 작은 아버지는 풀 베시고

 사촌동생도 열심히 예초기를 돌리고 ...

 무지 산골 동네입니다... 저 앞에 보이는 산이 우리 고향마을 뒷산입니다. 어릴 때는 저 산에가서 나무도 베어

오고.. 진달래도 따먹고..다래. 머루도 따먹고..토끼도 잡고... 해야 했는데..

무서움을 많이 타서 많이 하지는 않았답니다..

 

그때 새소년인가 하는 어린이 잡지책엔 '4차원의 세계로 사라진 사람들'.. 뭐 이래서 친구들하고 놀던 아이가

바위뒤로 숨었는데 갑자기 사라지져.... 뭐 이런 믿거나 말거나 하는 글을 읽고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무서워서 ㅠㅠ  지금 생각해 보면  어설프게 아는 게 병입니다. ㅎㅎ

 

 전봇대 아래 조그만 밭이 얼마전 고인이 되신 백남봉 선생이 어릴적(약 60년전) 살던 초가집이 있었던 자리

랍니다.

지금은 집터만 남았죠. 무지 가난하게 살던 어린시절에도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던분인데 너무 빨리 하늘나라로 가셔서 아쉽네요..

 

전봇대 뒤에 보이는 저 집은 어릴적에는 복숭아밭 가운데 있던 집이었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복숭아

서리해 먹으려다 들켜서 놀라 가방보따리도 던져버리고 도망갔다가  친구가 잡혀있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자수

해서 손들고 서서 혼났습니다..지금은 빈집이 되고 복숭아 나무는 없고 참깨밭이 됐네요

 제가 살던 고향마을입니다. 방화(芳花)부락.. 꽃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바로 고향마을 뒷산이 내동산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걸 어릴때는 몰랐습니다.

그냥 '시낭골'이라고 불렀는데 '信仰골'을 그렇게 부른 것 같습니다. 골짜기가 제법 깊고 그 안에는 무당들이 사는 조그만 집들이 있어서 그렇게 불른 것 같습니다.

마을 맨 왼쪽 끝에 350년된 느티나무가 서있고 우리집은 바로 그 옆집이랍니다. 잘 보이지는 않네요. 뒷편에 개간밭은 어릴적 어머니가

괭이로 나무뿌리를 하나씩 캐내서 만든 것이랍니다. 저도 물론 옆에서 나무뿌리를 날랐죠..   

그때는 진달래 뿌리가 그렇게 많아 귀찮아 다 버렸는데.. 지금은 목부작(나무뿌리에 난 올려 키우는 것)에 쓰려고 비싸게 사간답니다. ㅠㅠ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아 다시 산이 돼가고 있습니다.

겨울밤에는 저 느티나무 가지에 부는 스산한 바람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또 그 위에서 부엉이가 부엉부엉

울어대면 얼마나 무서웠는지 ..

 

네시간 후.. 많이 깨끗해졌습니다. 조상님들 머리를 깍아 드리니 마음도 시원합니다.

 고향마을을 흘러가는 냇물... 섬진강 상류지역이라 깨끗합니다.

오른쪽 산 중턱에는 바위를 깍아내고 우리 조상님들이 만든 놀이터.. 만취정(晩趣停)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삶의 여유를 느끼시는 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자랑하려고 하시는지...가보자고 하시는데...

 

잘 모르는 분들은 이런 경치 좋은 곳에 정자지어 놓고 기생들 불러다 술타령이나 하던 졸부로 오해할 수 있겠네요.

(속마음은 "네 조부님들이 탐관오리로 이 앞 땅을 다 사놓았는데.. 이제 그게 다 네 것이다.." 이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실은 6대조 할아버지 5형제분들이 힘을 모아 만든 형제애의 상징이랍니다. ㅎㅎ

수해복구공사하느라 길이 끊겨서 오늘은 가보지는 못하고 시간도 늦어 다음을 기약합니다.

 어릴때는 그 정자아래 냇물에서 멱도 감고 고기도 잡고 즐겁게 놀았답니다.

그때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딘가에서 추억을 간직하고 잘 살겠죠

* 진안 마이산은 대전-통영고속도로 장수JC에서 완주/전주쪽 고속도로로 진입하면 쉽게 가실수 있어요. 서울에서도 3시간이면 충분하죠.

 예전엔 무주,진안,장수가 한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구 였는데 앞글자만 따서 "무진장"이라고 불렸습니다, 말 그대로 무진장 산골동네

 였는데 대전-통영고속도로 생기고 교통이 많이 좋아졌답니다. 인삼도 많이 재배해서 진안장에 가시면 싸게 살 수 있답니다.

 

* 마이산에 가시면 진안읍에서 바로 가시는 길과 금당사라는 곳으로 돌아가는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금당사길로 가시면 좀 더 걸어도 구경할 곳이 많습니다. 금당사에서 마이산 중간에 저수지가 있고..

  그 저수지 옆에 부부시비가 있는 데.. 그 부부시비가 바로 저희 6대조 할아버지 부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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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산] 92년 12월호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 방화마을 (취재 / 92.10.24-25)

마령 가는 밤길엔 비와 진눈개비가 쏟아졌다. 송영호와 함께 하주용 노인댁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삼의당 부부시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비는 일요일 아침에도 여전히 부슬거렸다. 아침상을 물리고 만취정 따위 볼 것들 구경을 다녔다. 내친 김에 금당사 저수지 근처에 있는 부부시비(詩碑), 강정리의 오현사(五賢祠) 및 둥구나무 전설을 살폈다. 마이산 뒤켠의 이산묘( 山廟)가 이채로웠고, 구산서원은 그 자리잡음이 으뜸이었다. 서원이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 임실군 관촌면 신흥사 일대, 히여터 필봉산 베트라 따위 다음 산행 및 마을 구간들을 예비답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