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학창 시절에 수많은 동창들이 있었지만, 예순이 넘어 만나는 친구는 4명만 남았다.
유튜브나 블로그 등을 보면 '몇 살 넘어서는 동창회 나가지 마라', '전 직장 동료들 모임에 나가지 마라', '나이 들면 고독을 즐기는 힘, 고독력을 키워야 한다', '혼자 사는 법을 배워라' 등등 나이 들수록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옛날 철학자의 말까지 인용하며 자발적 왕따가 되라고 현혹한다.
그런 글에는 찬동하는 댓글이 대부분이다.
그런 모임에 나가면 잘난 척하는 사람이 있다, 옛날 젊었을 때 잘나가던 얘기만 한다, 자식 자랑, 손자 자랑, 돈 자랑에 지친다 등 이유가 다양하다.
물론 모임에 나가면 어떤 친구 또는 대부분의 친구가 자랑질하는 게 사실이고, 또 그것이 과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자.
예순 넘어 은퇴해서 사회의 주력 집단으로부터 멀어져 아내 말고는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이들이, 누구를 붙들고 자식 자랑, 손자 자랑, 돈(?) 자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묵언수행한다고 생각하며 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살 수도 있겠지만, 이제 와서 출가를 할 수도, 깊은 산속에 들어가 "나도 자연인이다"라며 강제로 입을 닫고 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자랑질할 시간도, 자랑질하는 친구나 옛 동료가 꼴 보기 싫은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백세 인생'이라는 말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해 보험에 가입시키려는 보험회사의 과장된 마케팅 구호였음을 이제 알게 되지 않았는가.
남자 나이 60세 넘으면 언제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으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남자 나이 80세 되면 언제 하늘나라로 가도 이상하지 않다.
건강해도 길어야 15년이다. 그 이후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누워 자랑질했던 시간, 자랑질하던 친구가 미웠던 시간이 그리워질 것이다.
죽으면 납골당이나 수목장 잔디 아래서 수천만 년을 말 한마디 못 하고 지내야 하는데, 1년에 몇 번 만나는 몇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겠는가.
예전부터 모임에 가면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어 왔다. 거기에 자식 자랑, 손자 자랑, 돈 자랑, 과거 자랑 빼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쇼펜하우어, 니체, 논어, 맹자 등 철학 이야기는 형이상학적인 삶보다 형이하학적인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언감생심이다.
골프, 여행, 등산 등 취미 이야기는 결국 돈 자랑으로 들릴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이 자랑질로 들리는 이유는 내가 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아서다.
내 돈이 상대방보다 적으니 돈 자랑으로 들린다. 내 자식의 처지가 상대방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니 자식 자랑으로 들린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동정하기는 쉽지만,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것은 본능이다.
그래서 내 스스로가 초라하다고 느껴지는 자리에는 나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자랑질하러 나온 사람도 마음 편하게 자랑질을 할 것이다.
어차피; 그런 모임에 나온 친구들은 자랑질이 하고 싶어 나온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친구들과 동료들을 멀리하고 자발적 왕따의 삶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유한하고 사회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마음을 열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더불어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 자랑질 하는 친구도 인생의 모든 면에서 다 자랑질을 하지는 못할 처지 일 수도 있다.
돈자랑하는 친구는 젊어서 너무 돈이 집착하다 보니 가정불화가 있을 수도 있고
출세했다고 자랑하는 친구는 너무 일에만 매달려 자녀들과의 관계가 소원해 졌을 수도 있다
자식자랑하는 친구는 또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늘은 공평해서 어떤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갖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살면서 보아 오지 않았는가.
그러면 자랑질의 대상을 다른 곳으로 바꿔볼 수도 있지 않는가.
내가 너보다는 아직 머리카락이 더 많이 남았어.
우리 아들딸은 대기업에서 연봉 6억은 못받지만 퇴근하면 내 손잡고 산책 나가자고 한다.
내 마누라는 아직도 내가 손잡아 주는 것이 좋단다
이런 말도 안되는 자랑질은 어떤가,
"나 아직 이혼 안 당했어!"
또 이런 자랑질도 싫증나면
같이 당구를 쳐볼까. 같이 박물관을 가볼까. 같이 한강 라면을 먹을까.
옛 친구들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이 뭘까.
살아있을 때, 내 발로 내가 가고싶은 곳을 걸어다닐 수 있을 때, 자랑질할 사람이 있고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
그때가 행복한 시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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