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농부

벌초하러 고향에 다녀 온 날(8월 28일)-느림을 즐겼던 조상님들

해바라기요양원 2011. 8. 30. 00:40

아침 6시 반,,,이렇게 일찍 농장에 온 것은 처음같아요.

 열심히 준비물을 챙깁니다. 풀 깍을 것,

 달개비 꽃

 나팔꽃

 달맞이꽃

 아침햇살을 맞아 눈부신 고구마 밭

 녹용 보약(?)을 먹고 밤사이 더 파릇파릇해진 고구마잎....

 내려가는 길은 천안 인근에서 잠시 밀려서 2시간 40분만에 도착했네요. 작은마버지, 작은어머니, 사촌동생이 먼저 도착해서 벌초를 하고 있어요.

 동생이 먼저 예초기로 풀을 깍고 있어요.

 멀리 보이는 마이산.  뚱뚱한게 암마이산, 뾰족한게 숫마이산..암수 한쌍입니다. 부부산이죠.

 멀리 왼쪽에 보이는 산이 백운산...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이 있는 산이죠. 오른쪽은 우리 고향집 뒷산..내동산 이라는데 어릴적에는 이름이 있는지도 몰랐답니다 ㅎㅎ

 내동산 전경.. 왼쪽 봉우리 위에 큰 참(상수리)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와 마을 뒤에 있는 나무를 쇠줄로 연결해서 산 위에서 땔감을 한 후 꽁꽁 묶어서

철사고리에 매달아  쇠줄에 내려 보내면 쇠와 쇠가 부딪히느라 파-파-팍 불꽃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산꼭대기에서 마을까지 내려옵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아이디어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험한 저 산을 어떻게 땔감을 지고 내려왔을까요.

 

멀리 가운데 뾰족하게 보이는 부분이 '사람 얼굴 닮은 바위' 입니다. 작아서 잘 안보이지만 우리 고향집에서 보면 사람 얼굴같이 눈,코,입 다 있답니다.

국민학교때 교과서에 나온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이 있었는데 그 글을 읽으며 그 바위와 소년이 저 바위와 저 처럼 느껴졌었답니다.

세월이 지나보니 그건 아니네요 ㅎㅎ

그 소설에서는 후에  저 바위를 닮은 훌륭한 사람이 나타날 거라는 말을 듣고 자란 소년이 나중에 커서 보니 자기가 바로 그 바위를 닮은 훌륭한 소년이 됐다는

그런 얘기 였던 것 같은데...쩝

 

 

인삼밭...살짝 엿봅니다.

 이 윗길로 올라가면 내동산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가 있네요. 표지판까지 만들어 놨습니다.

 계속되는 비로 고추들이 명들고 말라죽어 고추값이 작년의 3배라는데..여기는 고추농사가 잘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병도 많이 들었고 줄기도 말라 죽어가는게 많아요. 올해는 국산 고추 구하기가 힘들 모양입니다.

예초기를 열심히 돌렸더니 3시간 만에 말끔히 벌초를 했습니다. 작년엔 서툴었는데 한해 해보니 경험이 쌓여 훨씬 수월하네요.

 

 조상님들의 놀이터였던 만취정(晩趣亭) 청소하러 갑니다. 만취정.....느림을 즐기는 정자..이런 뜻인가 봅니다. 느림의 미학, Slow Food 등 느림이 유행할 줄

몇백년전에 예상을 하셨나 봅니다. 가운데 바위틈 사이에 숨여 있어 잘 안보이실 것 같아요.

 여기가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 상류지역입니다. 

 정자 바로 아래 바위에 쓰여있는 송객정(送客亭) 손님을 떠나 보내는 정자...우리 어릴때는 이 근처를 송가쟁이 송가쟁이라고 해서 솔가지를 말하는 건가?

뭔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 보니 송가정을 송가쟁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네요.  제 어릴적에도 우리집엔 할아버지 전국 각지에서 친구들이 찾아 오셔서 며칠씩

묵어가셨는데... 얼마나 보내기 싫었으면 여기까지 배웅을 했을까요. 

 정자에서 바라본 우리 고향마을..한눈에 보이네요.

 섬진강 상류쪽. 이 물어세 어릴적에는 나체로 친구들과 비료푸대 뒤집어 바람넣어 튜브처럼 해가지고  개헤엄치고, 좀 더 커서는 물고기 잡아 어죽도 끓여 먹고

해야 했는데 그런 것 할 만한 나이에 고향을 떠나서 아쉽게도 추억이 멈춰버렸습니다.

 하류쪽... 해가 어스름한 저녁나절에 삼촌이 저 물에 들어가서 그물을 쳐 놨다가 새벽에 가서 걷어 오면 붕어 피리 빠가사리 메기..이름도 기억 안나는 물고기들이

제법 잡혔었죠.

 정자 청소는 우리 가족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중 어른들과 같이 합니다. 사십여년만에 뵙는 얼굴이라 성함은 긴가민가 하지만 얼굴 모습은 알아보겠네요.

 

 

 

 현판을 보니 숭정무진(崇禎 戊辰) 우짜고 저짜고 써있으니 이 정자를 만든 해를 추측할 수 있겠는데 제 실력으로는 어렵네요. ㅠㅠ

인터넷에 조회를 해보니 보물 839호 '숭정9년 명신법지평일구'라는 해시계가 인조 14년(1636년)에 만든 것이라니 이 정자도 대략 그 때쯤 지어진 건가요????

 그때 이 정자를 지으신 조상님들이 5형제이셨는데..바로 이 분들이셨답니다. 우리 집은 다섯째 아들(화락당 봉) 집안이네요. 원래는 남원에 사시다가 난을 피해

이 곳으로 오셨다는는군요

 400여년전(?)에 지은 원래 정자는 그 뒤 없어지고 단기 4302년(서기 1969년)에 다시 지었네요. 저도 어렸을적에 목수 아저씨가 우리집 마당에서 나무를 다듬던 생각이

납니다. 그 목수 아저씨가 제 친구 아버님이어서 더 기억이 나요. 먹줄로 줄 그어가며 대패질 하던 생각이죠.

 

 

 이 낭떠러지에 이만한 집을 세우려면 돈도 꽤 많이 필요했을 텐데... 그리고 내려가는 길이 낭떠러지라 위험해서 조상님들이 술은 많이 못드셨을 것 같아요.

만취정..느림을 즐기는 정자...이제는 세월이 흘러 많이 쇠락했지만 자연을 벗삼아 느리게 살고자 하셨던 조상님들의 정신은 남아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