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의 하루

장대비 내리는 날과 접씨꽃 당신

해바라기요양원 2011. 7. 3. 22:05

 오랜 장마의 절정인지 오늘은 엄청나게 장대비가 내립니다. 수도권은 200mm정도가 왔다니 우리 마을에도 그만큼 왔겠네요.

 잠시 이슬비가  내리는 동안 찍은  마을 뒷산...

 장맛비에 호박 줄기는 하루가 다르게 자랍니다.

 

열흘 장마 기간동안 내린 비가 이만큼이네요.. 이 물통의 높이가 80 Cm 정도인데  장마시작 전에는 텅 비어 있었으니 지금까지 내린 비가 800 mm가 넘는다는 말이죠,

만약 빗물이 흘러가지 않고 고여있다면 온 동네가 물애 허리 정도 잠겨있다는 말이네요. 세종대왕 측우기도 이런 원리겠죠.. 여기에 눈금만 표시하면요

 왼쪽에 접시꽃이 폈네요..  접씨꽃도 색이 다양한데 내 어여쁜 색씨의 한복 치맛자락처럼 느껴집니다..

 

 작년에는 사람 키만하게 자랐던  백일홍이 올해는 허리정도로 자랐습니다.

 

 개울에 흐르는 물이 엄청납니다.. 장대비가 내리던 때는 이보다 2-3배 많이 흘렸으니 무시무시합니다. 작은 개울이지만 사람이 빠지면 휩쓸려 내려갈 것 같아요.

 덕분에 자갈. 잡초, 흙더미 등이 흔적도 없이 휩쓸려 갔습니다. 청소 한 번 시원하게 했네요.

우리나라 일년 평균 강수량이 1500 mm라는데 이번 열흘 장마 기간 동안 반이 넘게 내렸네요. 이제는  장마가 그치고 일주일에 하루씩만 배가 내려주면 좋겠습니다 ㅎㅎ

 

접시꽃 당신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을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