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아름다운 우리나라

(만해 한용운)-매국노를 매국노라 부르지 못하고...백야 김좌진 장군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지를 방문하고

해바라기요양원 2011. 7. 1. 22:16

천수만에서 홍성 IC로 가는 도중에 김좌진 장군, 한용운 선생 生家地f라는 간판이 보이네요... 순간 갈등이 생깁니다...보고 가? 그냥 가? 두시에 약속이 있어 빠듯하긴

하지만  안내판에 몇 Km인지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됩니다... '그래 내 평생 이번이 아니면 언제 이곳까지 오겠냐?'는 생각이

들어 급히 핸들을 꺽습니다. 얼마전만 해도 ' 다음에 들르지 뭐'...했는데 이제는 '다음에 언제?'라는 생각이 먼저 드니 나이를 먹긴 했나 봅니다.

 

다행히 백야 장군 생가지는 가깝습니다. 단아하게 생긴 기와집입니다.

 1889년에 태어나셨는데 1907년에 호명학교를 세워 신교육을 하셨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네요.. 19세의 나이에 학교(지금으로 치면 작은 학원 정도겠지만)를 세워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셨다네요. 게다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산리 대첩이  32세때 세우신 전공이라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입구...오른쪽엔 기념관 왼쪽엔 생가가 있습니다.

 기념관은 현대식 한옥인데요.. 마음이 급해서 기념관 안에 들어가는 것은 생략합니다. 저는 기념관 보다는 생가에 관심이 많거든요 ㅎㅎ

 왼쪽에 있는  생가...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한옥 한채입니다. 집으로만 보면 그 시절에 부자집은 아닌 중상층 정도 이셨던 것 같네요.

 대륙 침략의 야심으로 매국노를 앞세워 합병조약을 강결하고 국권을 도취한 도이(섬나라 오랑케)는.... 현대식 표현이 아닌 문장이네요 .. 요즘은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많고 방문객들이 주로 어린 학생들인데 그 분들이 읽지를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글인들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아쉽네요. 1999년에 세웠으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생가 대문입니다.

 대문에는 김좌진이라는 문패가 달려 있네요.. 마치 장군님이 살아 계신 듯합니다.  

 정면 마굿간에는 늠름하게 생긴 백마가...금방이라도 히힝하며 장군님을 태우고 만주 벌판으로 달려갈 듯 합니다. 모형이랍니다 ㅎㅎ 

본채..6칸 짜리네요

 

 우물가에 맷돌이 있는데 이동식이 아니라 고정식인 것이 이채롭습니다.

 집 안에서 대문쪽을 내다 본 모습입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려는 순간 초등학교 학생들이 견학을 왔네요..버스에 홍동초등학교라고

 백야 장군의 생가지를 나와서 급히 만해 선생 생가지로 달려 갑니다.. 약 7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지금 사진을 보니 시간표시가  10분 차이가 나네요.  차로 10분 거리인

모양입니다. 백야 장군 생가와 가까이 있어 두분이 혹시 아시는 사이인 것은 아닌지? 학교라도 같이 다니신 것은 아닌지? 궁금해 집니다. 자세히 보니 만해 선생께서 백야 장군님 보다 10세 연상이시네요

 

 주차장 앞에 있는 만해 문학 체험관....역시 마음이 급해서 들어가 보지 못합니다

 멀리 만해 선생 생가가 보입니다. 백야 장군과 달리 초가집입니다.

 관리사무소도 초가집

 세칸짜리 초가집이네요..

 이건 뭔가요?

 푸세식 화장실... 예전엔 측간. 칙간...변소..등으로 불렸는데...앞에 사용금지라고 씌여 있습니다...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측간은 원래 집에서 잘 안보이는 측면에 위치해서 측간인데 이렇게 대문 옆에 있는 것이 전혀 생뚱맞습니다. 원래 그런 것인지 나중에 만든 것인지???고증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만해 선생의 그 유명한 시.... 님의 침묵...떠나간 님은 빼앗긴 나라라는데..지금은 진짜 애인으로 생각해도 되니 광복이 좋긴 합니다. 만약 아직도 식민자였다면 이 시도

금지곡 아닌 금지시이겠네요.

 우물과 장독대

 

 대나무로 둘러 싸였네요.. 바람이 불면 대나무 부딪히는 소리가 참 좋을 듯합니다.

 새로 짓는 건물인데 .뭔지는 모르지만 만약 만해 선생에 관련된 건물이라면 저런 사치스러워 보이는 건물이 필요할 지도 의문이고 계단을

 저렇게 높이 쌓으면 사람들이 힘겨워 어떻게 올라갈까 걱정부터 앞서네요. 평생 소박하게 사셨던 선생님의 뜻은 물론  단촐한 생가와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건물

 저 길로 선생님이 터벅터벅 걸어 오실 것 같습니다. 이 길도 차가 못들어 오는 길이니 작은 오솔길로 놔뒀더라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오솔길이 그리운 것은 제 어릴때 모습이 그립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보따리 허리에 질끈 동여 매고 꾀죄죄한 차림새에 검정고무신 신은 소년의 모습이죠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신 두분의 생가지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만가지 생각이 납니다.

 

이 분들이 애국자라면 이 분들과 반대의 길을 걸어 일본제국주의 권력에 협력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동족을 핍박한 자들은 매국노일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매국노를 매국노라고 부르지 못하고  매국노들의 행적을 밝힌 책마저 '매국노인명사전'이 아니라 '친일인명사전'이라니... 이 자들이

단순히 일본을 좋아하던 사람들인데  얄미워서 인명사전에 올랐다는 것인지 ....분통이 터집니다.

 

친일인사 중에서도 장지연(시일야 방성대곡을 쓰신) 선생처럼 원래 애국자였으나 일제의 교활한 탄압을 받아 현실과 타협한 분들은 인간적으로 이해한다 치더라도

박정희나 얼마전 모 공영방송에서 전쟁영웅으로 미화됐다는 논란이 있는 백선엽 같은 사람들은

개인적인 입신양명을 위해 일왕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혈서를 쓰고 일본군대에 입대하고, 동포를 잔혹하게 죽인 간도토벌대에서 활약하던 자들이

동포를 탄압한 경험과 지식을 이용하여 해방된 조국의 요직을 차지하고 호화롭게 살다가

국가의 발전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매국노의 멍에를 벗겨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도둑질을 일삼던 전과자가 어느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도둑을 잡는데 쓰겠다고 경비회사 임원으로 들어가  호의호식하다

퇴직할 때 도둑 몇명 잡는데 공헌했다고 표창장 받고 영웅 취급받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친일인사니 하는 애매한 표현보다 매국노를 매국노라 부를 수 있는 시대가 와야 진정한 독립..광복이 이루지는 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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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이 꿈꾸던 행복한 노후생활-용인해바라기요양원입니다,

연락처 : 010- 75 4 8- 4 0 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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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해바라기요양원

용인해바라기체험농장에 있는 노인요양원(정원 9명 이하의 가정형)입니다.


용인 IC에서 7분거리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여 자녀분들이 어르신을 자주 찾아뵐 수 있으며
상수원보호구역에 위치하여 고향집같이 편안하며 조용한 전원생활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1인실, 2인실. 부부실, 3인실이 있습니다.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은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방문하는 것처럼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곳으로
1) 가족들과 텃밭을 가꿀 수 있으며
2) 향후 가족들이 어르신과 주무시며 놀 수 있도록 방갈로도 대여해 드릴 예정입니다.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은 불가피하게 가정에서 어르신을 모실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어르신들에게는

'자녀들로 부터 떨어져 산다'고 느끼는 곳이 아니라

'주말이나 휴일에 자녀들이 놀러오는 내 집'

보호자분들에게는

' 아픈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병문안 가는 곳'이 아니라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놀러가는 곳' 이 되겠습니다.

입소하실 수 있는 분은

1) 노인장기요양등급 1, 2, 3급

2) 등급판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불가피한 이유로 가정에서 모실 수 없는 어르신입니다.

비용은 본인부담금(식대 포함) 월 약 55만으로 등급에 따라/ 사용하시는 방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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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소대상 :

- 장기요양1, 2, 3 등급자 ( 기초수급자, 기타 의료수급자)

- 등급을 받지는 않았지만 가정에서 모시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