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아름다운 우리나라

진도 남도석성

해바라기요양원 2010. 5. 27. 11:21

2010년 5월 6일 오후3시경 지나가다 진도 남도석성에 들렸다. 벌써 20여일이 지났네.. 바쁜건지 게으른건지

작지만 아름다운 진도석성의 풍경. 평일이라 나 혼자만 있었는데  차 2대가 도착하더니 2가족이 구경을 나왔다. 집에 두고온 가족들이

절로 생각난다. 가족들과 저렇게 여유있는 시간을 가진 날이 언제였던가? 앞으로 몇번이나 남았을까? 

 남도석성 안내문..진도에는 삼별초와 관련된 두개의 성이 있다. 용장산성과 남도석성이다. 삼별초는 몽고군과 강화도에서 싸우다 패퇴하여

진도로 항쟁지를 옮기는 데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용장산성(용장산성은 진도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고려 원종의 6촌인 승화후 온을 임금으로 옹립하고 본격적인 대몽항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에게 패하고 피란을 하게 된다.

이때 왕으로 추대했던 승화후 온(왕온)은 도망가다 무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왕온의 무덤은 진도읍에서 운림산방가는 고갯길에 초라하게

있고 궁녀들이 빠져 죽었다는 연못이 근처에 있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매립되어 조그만 연못으로만 남아있다(아쉽게도 사진을 찍어오지 못했

으니 다음 용장산성 소개할 때 같이 소개하겠습니다)

 

용장산성에서 패퇴한 삼별초군이 자리를 옮긴 곳이 진도석성(진도석성은 진도의 동남쪽에 위치) 근처에 배중손 장군의 사당이 있다.

이곳에서도 패한 삼별초군은 제주도로 다시 항쟁의 길을 떠나게 된다.

 진도석성은 평지에 돌을 쌓아 만든 조그마한 석성이다.

만호는  조선시대 지방행정관 직책이다. 萬(일만)戶(가구) 즉 일만가구의 최고책임자... 그러면 한 가구에 3-4인이라 하면 이 지역에 3-4만명의 주민들이 거주했다는 것인가???? 하여간 그 만호들이 주민들을 위해 많은 공덕을 쌓았다는 공덕비다.

 

원래는 해당 지방관이 떠난 뒤 그 공덕을 잊지 못하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해서 세우는 것인데 모진 탐관오리는 자기 임기동안 주민들을 닥달해서 또는 공금을 착복해서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고... 이 탐관오리의 전통이 최근까지 전별금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탐관오리의 유전자도 후손에게 꿋꿋히 전해오고....공덕비중 어느 것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우고 어느 것이 자기 손으로 세웠을까??? 그 후손은 어디에서 전별금을 받고 있을까?

 석성 사이로 보이는 민가의 모습.. 석성안에는 마을이 있고 주민들이 살고있다. 남도석성은 역사책의 한페이지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문화재청에서 진도석성을 복원하려고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있으며  몇집은 이미 헐어서 빈집터가 곧곧에 있다. 석성 안에 주민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고 조선시대에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려고 세웠다는 석성의 유래를 볼 때 주민들이 살고있는 마을 주위에 석성을 쌓은 듯... 그렇다면 주민 이주는 복원인가? 파괴인가? 빈집터에는 유물이 발견되었으니 임의로 파면 안된다는 안내문이....

주민들은 저 바위산 아래에 이주단지를 만들어 살 정이라고 한다.  산 아래에 보이는 것이 새로 조성될 마을부지이며 한옥으로 짓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국비와 도/군비에서 지원을 하므로 주민들은 일반 양옥집 짓는 수준의 부담으로 한옥을 지을 수 있다고...

 

주민들에 따르면 이 지역은 온통 바윗 덩어리라고 한다. 농사짓는 표면의 땅만 흙이고 조금만 파면 바위라고.. 한 가지 의문은 석성을

쌓는 것 보다는 저 뒷산을 활용해 산성을 쌓았으면 적들의 침입에 더 효과적으로 방어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뒷산은

높지 않지만 보이는 것보다 꽤 험한 산이다. 여몽연합군에 쫒기는 입장에서 새로운 성을 쌓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기존의 성을 활용했으리라

 정겨운 석성.. 감나무에서 막 돋아나온 잎이 싱그럽다. 이잎을 따서 감잎차를 만들기도 한다.

 소박한 텃밭과 감나무 잎이 잘 어울리는 듯.. 저 텃밭은 주인 아주머니의 반찬가게일텐데

 완두콩이 벌써 활짝 꽃을 피웠다. 따뜻한 남쪽나라라는 실감이 ..

 

 이것은 뭔 꽃인고? 담장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네

 석성안의 개울

 골목길 풍경

 돌 담이 이쁘다. 이 이쁜 돌담도 없어지겠지... 저 돌담을 우리 집으로 옮기고 싶다는 욕심을 내 본다

 이 정겨운 풍경도 곧 사라질 것이다. 이 석성안에는 기념관이니 하는 전통건물을 가장한 현대식 건물이 자리를 잡고.. 주민들도 이 낡은 집을 떠나 이주단지에서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풍경을 잊게 될 것이다.

 

용인해바라기마을 진도자연의선물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