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한국농업 농촌을 생각한다

가축(소, 닭, 돼지)이 행복해야 사람도 행복하다

해바라기요양원 2011. 1. 14. 11:34

구제역과 AI로 축산농가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농촌경제 더 나아가 국민들의 불편과 불안, 매몰처분으로 소요되는 비용 등으로 인한 고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동물복지도 생각해야할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식량이 부족해서 없어서 못먹던 시대에는 가축(특히 돼지, 닭)을 공장에서

물건 만들듯이 적게 들이고 많이 뽑아내려는 경제성의 관점에서 사육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가축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사람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겠죠. 동물복지는 동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사람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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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행복해야 한다… 구제역, 살처분, 유럽은 ‘동물복지’를 택했다(국민일보)

 

 

 

저 사진 속 ‘웃고’ 있는 돼지는 충북 단양에 산다. 태어난 지 두 달쯤 지나 적성면 각기리 단양유기농원에 왔고, 그때부터 980만 마리가 넘는 한국 돼지들 중에서 조금 다른 삶을 누리고 있다. 이 농장 돼지 1200마리는 모두 돼지고기로 식탁에 오를 비육돈이다. 이 녀석이 다 자라서 도축장을 거쳐 마트 정육코너에 가면 이런 이름이 붙어 진열된다. ‘행복한 돼지’. 이 브랜드를 개발한 단양유기농원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동물복지형 양돈농장이다.

돼지의 5대 자유

구제역이 처음 발병한 경북 안동에서 자동차로 불과 40분 거리에 이 농장이 있다. 11일 오전 10시쯤 입구에 도착하니 굳게 닫힌 철문 안에서 강유성(65)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로 취재 요청을 할 때 “방문 전 최소 사흘간 절대 다른 농장에 간 일이 없어야 문을 열어 줄 수 있다”고 다짐한 터였다.

농장 밖에 차를 세워두고 철문 안에 들어서니 강 대표가 곧바로 밀폐된 작은 가건물로 안내했다. 붉은빛의 자외선 살균기 밑에서 몸을 소독하고 방역복을 입는 동안 그는 “단양은 아직 구제역이 안 왔는데, 그래도 초긴장 상태예요. 우리도 한 달 넘게 여기서 못 나가고 있어요”라고 했다.

4000평 농장에는 축사 세 동이 있다. 각각 길이 32m에 폭 13m 공간이 칸막이 없이 뚫려 있다. 들어서니 돼지들 행동이 제각각이다. 급수기 꼭지를 빨아 물 마시는 놈, 사료통에 머리 박고 밥 먹는 놈, 20㎝ 두께로 푹신하게 깔린 톱밥 위에 누워 자는 놈…. 눈길을 끄는 것은 축사 안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대여섯 놈이다. 다 큰 돼지가 참 빠르게도 뛴다.

“밥 먹는 시간이 따로 없어요. 물도, 사료도 모두 무제한 자동 공급됩니다. 돼지들이 먹고 싶을 때 먹고,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뛰어놀다가 배고프면 또 알아서 먹는 거죠. 날씨 따뜻할 땐 밖에 나가서 놀기도 하고요(사진처럼 축사 옆에 꽤 너른 풀밭이 있다). 효소 섞은 톱밥을 깔아서 분뇨는 냄새 없이 발효돼요. 이걸 수시로 수거해서 퇴비로 친환경 농가에 팔아요.”(강유성 대표)

강 대표는 경기도 여주에서 5년간 양돈을 하다 2005년 이곳으로 옮겼다. 여주에선 다른 농장처럼 밀집사육이었는데, 독일로 축산연수를 가서 방목하는 돼지를 보고 이런 개방형 농장을 시도했다. 돼지들의 ‘복지’를 위해 뭘 해주냐고 묻자 돼지의 ‘5대 자유’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①배고픔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②불편으로부터의 자유 ③고통과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④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 ⑤공포와 불안으로부터의 자유.

동물복지(animal welfare) 개념은 1964년 영국에서 ‘동물 기계(Animal machines)’란 책이 발간되면서 구체화됐다. 저자 루스 해리슨은 꼼짝달싹 못하게 좁은 공장식 농장에서 단지 고기가 되기 위해 밀집사육되는 소 돼지 닭의 실태를 고발했다. 이듬해 영국 정부는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WC)를 구성했고, 이 위원회가 79년 발표한 게 가축에게 보장돼야 할 ‘5대 자유’다.

“물과 사료를 많이 준다고 다가 아니에요. 2시간마다 순찰하면서 사료통은 깨끗한가, 물은 잘 나오나 살핍니다. 돼지도 서열이 있고, 이지매가 있어서 먹이가 많아도 약한 놈은 잘 못 먹어요. 그래서 사료기를 일반 농장보다 15% 많이 설치했어요. 싸우지 말라고.” 이것은 ①번 자유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가 무항생제 1호 양돈농장이에요. 밀집사육은 호흡기 생식기의 세균성 질병이 많아서 사료에 항생제를 섞어 먹입니다. 항생제 없이 면역력을 갖추려면 위생과 운동밖에 답이 없어요. 그래서 농림수산식품부 기준보다 세 배쯤 넓은 공간을 주고 톱밥 축사를 만들었어요.” ③번과 ④번 자유에 해당한다.

일반 농장을 관리하다 두 달 전 이곳에 왔다는 조금종(50) 이사는 “사람이 축사에 들어가면 돼지들이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곁에 몰려드는 게 일반 농장과의 차이”라며 “돼지 1200마리면 보통 50마리 정도는 늘 병에 걸려 격리되는데, 여긴 서너 마리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동물복지의 경제학

2001년 2월 19일 영국 남동부 에식스 주의 한 도축장에서 돼지 27마리가 구제역 증상을 보였다. 다음 날 확진 판정이 나왔고, 지금 한국에 퍼져 있는 ‘O형 바이러스’였다. 살처분과 긴급 방역이 시작됐지만 한 달도 안 돼 스코틀랜드까지 감염됐다. 바이러스는 바다를 건너 아일랜드 네덜란드 프랑스로 번졌고, 같은 해 10월 소멸될 때까지 소 양 돼지 60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피해액은 약 10조원.

이 사태의 진행 과정은 이랬다. 첫 확진 판정이 나왔을 때는 이미 57개 농장에서 의심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확진 나흘 뒤에야 가축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졌다. 영국은 67년 이후 34년 만에 구제역을 만난 터다. 방역매뉴얼은 ‘농장 10곳 동시 발병’을 상정한 것밖에 없었다. 수의사가 부족했고, 추운 날씨에 급속히 퍼지는 바이러스를 따라잡지 못했다.

살처분 방법은 매몰이 아닌 소각이었다. 안락사시킨 가축을 들판에 쌓아놓고 태우는데, 미처 숨이 끊어지지 않은 돼지들이 깨어나 몸에 불이 붙은 채 날뛰곤 했다. 이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살처분의 잔혹함이 도마에 올랐다. 초동대처 실패, 허술한 방역체계, 부족한 인력, 살처분 논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장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발병 추이가 한풀 꺾였던 같은 해 5월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유럽연합(EU) 농업장관 회의가 열렸다. EU 의장국이던 스웨덴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농업의 위기다. 동물복지를 어떻게 개선할지 논의하겠다.”

그리고 6년 뒤인 2007년 9월,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자유무역협정(FTA) 3차 협상장. 자동차를 비롯해 굵직한 쟁점들을 챙겨 갔던 한국 협상단에게 EU 측은 돌연 이런 카드를 내밀었다. “한국에선 돼지나 닭이 학대받는다. 공장식 밀집사육인데다 도축 과정도 불투명하다. 동물복지가 보장되지 않은 축산물은 수입할 수 없다.”

동물복지 정책은 동물도 ‘감각이 있는 존재(sentient beings)’라는 철학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국제통상의 이슈가 돼버렸다. 동물의 복지가 사람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유럽은 2001년 구제역 사태를 겪은 뒤 동물복지 정책을 대폭 강화하며 이 흐름을 주도한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이황 연구사는 최근 영국 스웨덴 등 유럽 각국 검역 담당자들과 구제역에 관해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주제는 ‘당신이 검사한 가축에서 구제역 증상이 나왔다면 어떻게 하겠나’였어요. 유럽 참석자들은 가장 먼저 농장주가 받을 심리적 충격을 말하더라고요. 충격이 클 테니 농장에 머물게 할지, 심리치료사를 붙여줄지부터 고민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살처분을 얘기하는데 돼지가 자돈(새끼)이냐 비육돈이냐 모돈(어미)이냐에 따라 다른 방법을 제시하더군요. 자돈은 주사로 안락사시키면 되지만, 비육돈은 머리와 심장에 전기를 흘리는 게 타액 분비와 혈액 노출이 없어서 오염이 덜하다,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었어요.”

EU는 2006년 가축 성장촉진제와 항생제 사용을 못하게 했다. 내년부터 지나치게 비좁은 닭장, 임신한 돼지가 앉았다 일어서는 것 외엔 움직일 수 없는 ‘스톨 사육’을 전면 금지한다.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등 국토가 좁은 나라는 가축분뇨 발생량 등을 제한해 사육두수를 조절하고 밀집사육을 억제한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를 주도하며 사육 운송 도축 가공 등 모든 분야의 동물복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한·EU FTA 협상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해 8월 입법예고된 동물보호법 개정안 29조에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를 위한 조항이 담겼다. 사육환경을 동물복지 기준에 맞춘 농장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다.

“닭장(산란계) 문제는 지난해 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마리당 사육면적이 A4 용지 1장 크기밖에 안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소는 상대적으로 사육면적이 넓은데 돼지가 문제예요.”(농식품부 관계자)

국립축산과학원 전중환 연구사는 농식품부의 의뢰를 받아 동물복지 양돈농장 인증기준을 만들고 있다. 초안이 완성됐고 좀 더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그는 “임신돼지 스톨 사육을 못하게 하는 등 영국 동물보호협회(RSPCA) 기준을 최대한 참고했다. 현재 이 기준에 부합하는 국내 농가를 찾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제역과 동물복지

2002년 1월, 영국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WC)는 영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 보고서 ‘2001년 구제역 사태와 동물복지-미래를 위한 교훈’을 작성했다. 이런 내용이 담겼다.

‘구제역 긴급방역 훈련이 매년 실시돼야 한다. 발병 즉시 투입될 수의사 인력이 확보돼야 한다… 돼지 살처분에는 고통이 적은 도살용 충격기(captive bolt stunner·금속봉을 머리에 발사해 기절시키는 장비) 사용을 권한다. 양에게도 이 장비가 효과적인지는 좀 더 연구돼야 한다… 살처분 규모를 줄일 수 있는 백신 접종이 배제돼선 안 된다(영국도 당시 살처분을 고수하다 뒤늦게 백신을 접종했다). 백신을 맞아도 가축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소비자들에게 적극 홍보해야 한다….’

동물복지 관점에서 구제역 사태를 바라본 FAWC의 28개 권고사항을 영국 정부는 상당부분 정책에 반영했다. 하지만 그 뒤로 지금까지 구제역 발병이 거의 없어 이 매뉴얼을 사용할 기회는 없었다. 한국동물복지학회장인 전남대 수의학과 강문일 교수는 동물에게 방역시스템이란 사람의 의료보험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1년 영국 구제역은 34년 만이었죠. 우리나라는 2002년 안성에서 발생했다가 8년 만에 찾아왔어요. 경제논리로 따지면 이렇게 가끔 오는 가축 질병 때문에 지자체마다 혈액검사 설비를 마련하고, 충분한 방역인력 확보하고, 유효기간이 1∼2년인 약품을 상비하는 건 비효율적이죠. 그런데 이런 방역시스템은 의료보험 같은 거예요. 가축들이 사는 데 꼭 필요하고 흔들리면 대혼란이 오는, 복지 중에도 가장 기본적인 복지입니다. 우리가 의료보험 같은 복지를 경제논리로만 따지진 않잖아요? 가축을 상품으로만 생각해선 구제역 재발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단양=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